“거짓 없는 최고의 품질로 세계 속의 농심을 키워달라”
고(故) 신춘호 농심그룹 회장이 지난해 12월 마지막 출근 당시 임직원들에게 한 마지막 업무지시다. 단순히 물건을 파는 데 그치지 말고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을 수 있는 제품 개발을 통해 글로벌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당부다. 라면을 K푸드의 대표 제품으로 올려놓은 ‘라면왕’ 신춘호 회장은 눈을 감는 그 순간까지도 라면에 대한 열정의 끈을 놓지 못하고 향년 92세의 나이로 영면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이며 발인은 오는 30일. 장지는 경남 밀양 선영이다.
▶라면사업 위해 ‘홀로서기’ 감행=고 신 회장의 라면 신화는 196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 회장은 지난 1958년 대학 졸업 후 친형인 고(故)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을 도와 일본에서 제과사업을 시작, 일본롯데의 이사로 재직 중이었다. 당시 신 회장은 일본에서 유행하던 라면을 보고 국내에서의 사업 기회를 봤고, 형님에게도 조언을 구했다.
예상과 달리 신 롯데그룹 명예회장은 동생의 라면 사업을 강하게 반대했다. 라면이란 제품의 시장성이 크지않고, 특히 라면에 잘 모르는 신 회장이 이 사업에 뛰어드는 것에 대해 우려가 컸기 때문이다. 신 회장이 지난 1999년에 내놓은 자서전에서도 당시 심정에 대해 “신적인 존재나 마찬가지인 큰형이 반대하자 일종의 오기가 생겼다”며 형의 반대에 마음의 상처가 컸음을 토로하기도 했다.
신 회장은 끝내 형의 반대를 무릅쓰고 지난 1965년 한국으로 돌아와 농심그룹의 전신 ‘롯데공업사’를 설립한다. 롯데그룹의 첫 국내 회사인 롯데제과 보다도 2년 앞선 시기다. 당시 신 회장은 단돈 500만원으로 서울 대방동에 공장을 세우고, ‘롯데라면’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라면 사업에 대한 이견으로 형제 사이가 멀어졌고, 신 명예회장이 ‘롯데’라는 명칭도 못쓰게 하면서 결국 1978년 기업명을 ‘농심’으로 바꿔 롯데그룹에서 독립했다. 이때 틀어진 두 형제는 결국 생전에 화해하지 못했다.
▶“스스로 서야 멀리간다”…독자 개발로 히트상품=신 회장이 창업 초기부터 강조한 것은 ‘독자 기술 개발’이었다. “스스로 서야 멀리 갈 수 있다”라는 철학 아래 첫 라면 생산이 시작된 1965년부터 ‘라면 연구소’를 세웠다. 그때부터 시작된 농심의 연구개발(R&D) 노하우가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는 셈이다.
특히 그는 창업 초기 “한국에서의 라면은 간편식인 일본과는 다른 주식이 되어야 한다”며 “값이 싸면서 우리 입맛에 맞고 영양도 충분한 대용식이어야 먹는 문제 해결에 큰 몫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라면 산업이 궤도에 오르기 시작한 일본의 기술을 도입하면 제품 개발이 쉬웠겠지만, 그렇게 해서는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제품 생산이 어렵다는 게 신 회장의 소신이었다. 신 회장은 생전에 스스로를 ‘라면쟁이’ ‘스낵쟁이’라고 부르며, 직원들에게도 장인 정신을 주문하기도 했다.
덕분에 농심에는 히트 상품 뿐아니라 꾸준히 잘 팔리는 스테디셀러 제품도 많다. 농심은 1970년대 닭고기 육수 중심의 국내 라면시장에서 ‘소고기라면’으로 승부수를 던진 후 너구리·육개장 사발면(1982년), 안성탕면(1983년), 짜파게티(1984년), 신라면(1986년) 등 히트상품을 줄줄이 출시했다. 제품 인기에 힘입어 1991년에는 국내 시장 점유율 1위에 올라섰고, 이후 단 한번도 라면 시장 선두 자리를 누구에게도 내주지 않았다. 트럭 80대 분량의 밀가루를 쓰며 수 천번의 실패 끝에 탄생한 국내 최초 스낵인 ‘새우깡’도 50년째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세번째 ‘글로벌 매출 1조’ 식품기업으로 ‘우뚝’=신 회장은 국내 시장에서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일찍부터 해외 시장에 눈을 돌렸다. 1980년대부터 “세계 어디를 가도 신라면을 보이게 하라”는 미션을 갖고, 수출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덕분에 지금은 남극의 길목인 칠레 최남단 마젤란 해협 근처 푼타아레나스부터 알프스 최고봉인 몽블랑에서도 신라면을 만나볼 수 있다.
라면을 처음으로 수출한 것도 창업 6년 만인 1971년이었다. 일부에서는 해외시장에서 농심의 선전이 유명 인기 영화에 제품이 운좋게 출연한 덕이라고 폄하하기도 하지만, 사실 신 회장이 꽤나 오랜 시간 해외시장에 들였던 공이 이제야 빛을 발한 것이라는 게 내부 평가다. 농심은 1981년 일본 도쿄에 현지 사무소를 개설한 이후 1996년에 중국 상하이에 첫 해외 공장을 세웠다. 2005년에는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 공장을 지었다.
이에 따라 농심의 라면 수출액은 2004년 1억달러에 불과했지만, 지난해에는 9억9000만달러로 10배 가량 급증했다. 미국시장에서 농심 라면이 일본 라면보다 3~4배 비싸지만 더 잘 팔린다. 지난해 전체 매출의 약 40%를 해외에서 달성하면서 CJ제일제당, 오리온 다음으로 ‘해외 매출 1조원’ 식품 기업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한국의 맛으로 세계인의 입맛을 충분히 만족시킬 수 있다’는 신 회장의 생각이 결국 들어 맞았던 셈이다.
농심그룹 관계자는 “지난해 미국 뉴욕타임즈가 신라면블랙을 세계 최고의 라면 1위로 선정했을 때 누구보다 환하게 웃었던 신 회장이 기억난다”며 “가시는 길에도 자신의 오랜 치료를 도왔던 서울대병원에 감사의 뜻으로 10억원을 기부하는 등 아름답게 떠났다”고 말했다.
신소연 기자
육성연 gorgeous@heraldcorp.com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