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앤몰트’ 설립자 도정한 이사 인터뷰 수제맥주 불모지 한국서 시장성장 주도

좋은 원료 고집…국내 유일 홉 농장 운영 공급처 1100여개…편의점 확대도 속도

도정한 핸드앤몰트 설립자 [이상섭 기자 babtong@heraldcorp.com]
도정한 핸드앤몰트 설립자 [이상섭 기자 babtong@heraldcorp.com]

‘맛있는 술’ 즐기는 문화 만들고파 “최근 제주도에 갔는데 편의점에 저희 맥주가 있더라고요. 시내도 아니고 외곽 작은 편의점이었죠. 기대도 안하고 갔다가 눈물 날뻔 했어요. (어디서든 우리 맥주를 만날 수 있는 것) 그게 바로 제 꿈이었거든요.”

이달 초 서울 용산구 핸드앤몰트 브루 랩(Brew Lab)에서 만난 도정한(46) 핸드앤몰트 설립자 겸 이사는 최근 판매처 확대에 본격 나서고 있는 소회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지난 2014년 설립된 핸드앤몰트는 국내 1세대 수제맥주 기업 중 하나다. 도 이사가 사업을 시작할 당시에만 해도 한국은 수제맥주 불모지나 다름 없었다. 현재 국내 수제맥주 시장은 매년 두자릿수 이상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도 이사를 포함해 개성있는 수제맥주를 꾸준하게 만들고 그 맛을 알려온 업계 종사자들이 있었기에 이같은 성과가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날 만난 도정한 이사는 톱 모델인 아내(도 이사는 모델 송경아의 남편으로도 알려져 있다)와 달리 사진 촬영을 다소 어색하하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쑥스러움을 타는 듯 했던 그가, 맥주 이야기를 시작하자 금세 눈빛이 달라졌다. 학창시절부터 창업 과정, 한국의 술 문화에 이르기까지 에피소드가 쉼 없이 쏟아져 나왔다.

▶반지하방에서 만들어먹던 맥주, 사업으로=도정한 이사는 수제맥주와는 전혀 관련 없는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어린시절 가족과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 미국 로스앤젤레스 UCLA(University of California)에서 정치학을 전공했다. 1997년 한국으로 돌아와 2001년부터 2003년까지 아리랑 방송에서 기자와 앵커, 뉴스 PD로 일했다. 이후 글로벌 홍보대행사 에델만 코리아를 거쳐, 2005년 굴지의 IT기업 마이크로소프트(MS)사에 발을 들였다. 한국 MS 컨슈머사업본부 총괄 이사직까지 역임한 그는 2013년 돌연 회사를 박차고 나와 수제맥주 양조장을 차렸다.

“1997년 여름이었나, 역삼동 반지하에 살 때 온도가 좋다보니 홈 브루잉(양조)을 했었어요. MS 싱가포르 지사에 있다가 한국으로 돌아오니 예전 친구들은 다 결혼했고 만날 친구들이 없더라고요. 그러다가 새 친구들을 만났는데, 집에서 맥주를 만드는 친구들이었어요. 예전에 홈 브루잉을 했던 기억이 나면서 다시 한번 해보고 싶더라고요. 그 친구들이랑 맥주도 만들고 수업도 듣고 하면서 다시 빠져들게 됐어요.”

도정한 핸드앤몰트 설립자 [이상섭 기자 babtong@heraldcorp.com]
도정한 핸드앤몰트 설립자 [이상섭 기자 babtong@heraldcorp.com]

과거 식당을 운영했던 경험이 도 이사에겐 큰 동기 부여가 됐다. 수제맥주 사업을 하기 전 그는 서울 강남구청역 인근에서 식당을 운영한 적이 있었다. 당시만 해도 인근에 수제맥주 파는 곳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때 가게에서 수제맥주를 제공했는데, 이를 맛본 손님들 표정이 마치 새로운 세상을 경험한 듯 보였다고 했다. 도 이사는 ‘이게 내가 만든 맥주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면서 수제맥주 사업에 도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차안에서 김밥 먹고 발품 팔아 입소문 시작=사업을 준비하면서 도 이사는 업계 전문가들을 여럿 영입했다. 소규모로 맥주를 제조할 수는 있었지만, 대량 제조엔 보다 전문적인 기술과 노하우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물론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는 것에 두려움도 있었다. MS 재직 당시 제공받던 안정적 수입은 물론, 여유로운 식사시간도 사치일 수 있다는 걸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사업 시작할 당시 주류면허 허가를 받으려고 마포 쪽에 갔었어요. 담당자가 몇시간 내에 끝내준다고 해서 차 안에서 기다리고 있었죠. 점심을 못 먹어서 1500원짜리 김밥으로 배를 채웠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불과 두 달 전만 해도 필레미뇽 같은 음식도 먹었는데…’(웃음), ‘더 편하게 살 수도 있는데’라는 생각이요. 이게 잘한 선택인가 고민도 많았어요.”

당시 수제맥주 시장이 막 태동할 시기다보니 관련 규제도 사업에 있어 난관 중 하나였다. 과거 국내 맥주에는 엿기름, 밀, 쌀, 보리, 감자 등 제한된 원료만 사용할 수 있었다. 스타우트 맥주(흑맥주)의 경우 ‘귀리’가 필수적인데, 이를 쓰지 못하니 생산 자체가 불가능했다. 그랬던 것이 정부가 2017년 주세법 개정을 통해 주류제조에 허용되는 원료와 첨가물 범위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귀리와 호밀, 고구마, 메밀, 밤 등의 재료도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핸드앤몰트 브루 랩 내 양조시설 [제공=핸드앤몰트]
핸드앤몰트 브루 랩 내 양조시설 [제공=핸드앤몰트]

아무리 좋은 맥주를 만들어도 이를 구입해줄 거래처가 없으면 소용 없는 일이다. 도 이사는 직접 만든 맥주를 페트병에 채워넣고 직접 식당 등을 찾아다녔다. 친절하게 대해주는 이들도 있었지만, ‘야, 거기다 두고 가’라며 무안주는 이들도 있었다. 그렇게 6개월 발품을 팔았더니 입소문이 나면서, 다음부터는 전화받기에 바빴다고 도 이사는 당시를 떠올렸다. ▶“AB인베브 업고 고품질 맥주 더 저렴하게 제공 가능해져”=핸드앤몰트는 수제맥주를 펍과 식당 등에 공급할 뿐 아니라, 직접 매장(핸드앤몰트 탭룸)도 운영하며 이름을 알려왔다. 그러던 중 설립 4년째 접어든 지난 2018년 핸드앤몰트는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오비맥주 글로벌 본사인 세계 최대 맥주기업 AB인베브에 인수된 것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대규모 맥주회사의 수익성 중심, 대량생산 시스템에서 핸드앤몰트가 정체성을 잃어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당시 결정에 대해 도 이사는 “맥주를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원료”라고 강조하면서, “1000여종의 효모 등 양질의 원료를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 우선 설득당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경험과 인프라가 풍부한 회사와 손 잡으면, 품질 좋은 맥주를 보다 저렴하게 공급하는 것이 가능해진다는 이유가 컸다. 그는 “주위 우려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좋은 제품이 나오고 있는 것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핸드앤몰트 수제맥주 10여종은 현재 전국 1100여개 펍과 레스토랑 등에 공급되고 있다. 캔맥주 제품은 지난해 전국 대형마트에 입점하기 시작했다. 최근엔 CU와 GS25 등 편의점으로 판매채널을 빠르게 확대해가고 있다. “편의점에서 수제맥주 사는 일은 꿈도 못 꿨던” 사업 초기와 크게 달라진 모습이다.

도 이사가 사업에 뛰어들 당시 전체 맥주시장에서 수제맥주 비중은 0.08%에 불과했지만, 이제는 3% 대까지 올라왔다. 이 비중이 6~8%까지 확대되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최근 주세법 개정으로 수제맥주에 부과되는 세금이 낮아지는 등 정책적 변화가 일면서 이 목표를 향해 더 빨리 갈수 있을 것으로 도 이사는 내다봤다.

▶“맛있는 술 즐겁게…기존 술 문화 바꾸는 것 목표”=도 이사는 수제맥주 저변을 넓히는 것을 넘어, 100% 한국산 원료를 활용한 한국 맥주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바람도 드러냈다. 맥주 주 원료인 맥아는 국내 생산이 어려워 대부분 수입에 의존한다. 국산 맥아를 생산해 쓰는 곳이 드물게 있지만, 전체 맥아 사용량의 5% 수준으로 완전한 대체는 요원한 실정이다. 이 때문에 국산 맥아에 대해 보다 연구하고 싶다고 그는 밝혔다.

더 나아가 도 이사는 한국의 술 문화도 바꿔가고 싶다고 말했다. 미국 생활을 오래했지만 그는 한국 술 문화에도 친숙하다. 미국 대학 시절 한국 동아리에 들어갔다가 한국인 유학생들을 통해 술 문화를 접했다. 덕분에 한국에서 회사를 다닐 당시, 한국식 음주 예절을 잘 아는 그의 모습에 임원들이 놀라워 하기도 했다. 그는 한국식 술 문화도 정겹지만, 음주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있는 만큼 기존 문화에도 변화가 요구된다고 말했다.

“보통 취하려고 (술을) 먹고 또 먹고 하는데, 다음날이면 서로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 기억도 잘 못해요. 맛있는 맥주 한두 잔만 마시면, 보다 의미있고 실속있는 대화가 가능하죠. 무조건 ‘부어라 마셔라’가 아닌, 좋은 사람들과 대화하며 ‘양보다 질’이 우선시되는 술 문화를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이혜미 기자/


육성연 gorgeous@heraldcorp.com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