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 동교동에 위치한 24시간 무인라면가게의 내부 모습. 기자는 4200원을 내고 라면 하나를 끓여 먹었다. 김희량 기자
서울 마포구 동교동에 위치한 24시간 무인라면가게의 내부 모습. 기자는 4200원을 내고 라면 하나를 끓여 먹었다. 김희량 기자

외롭거나 외롭지 않아서 먹는다.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기자가 최근 찾은 서울 마포구의 한 24시간 라면 무인가게에는 ‘갈 곳이 없어서’, ‘싸니까 조식으로’ 혹은 추억을 만들고자 라면을 끓인 이들의 사연이 적혀 있다. 한국에서 판매되는 라면은 500여 가지가 넘지만 취향을 타는 건 라면의 종류만이 아니다.

면을 사랑하는 한국인들의 ‘누들리즘(noodlism)’을 꿰뚫는 키워드는 취향이다. 우리 모두가 먹어 본 신라면이지만 누가 끓이느냐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물의 양부터 고명까지. ‘너가 먹는 신라면과 내가 먹는 신라면은 달라야 한다’는 건 일종의 미덕이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였다. 기자가 찾은 무인가게의 셀프 조리 코너에도 콩나물, 햄, 파, 떡 등 8가지 고명이 준비돼 있다. 그렇다. 라면을 말함에 있어 취향은 무죄다.

한국인이라면 공감할 수밖에 없는 라면에 관한 ‘오래된 소문’이 있다. ‘남이 끓여 준 라면이 제일 맛있다’는 속설이 대표적이다. 라면을 눈 앞에 만들어 오도록 가족 구성원들 중 누군가에게 떼를 썼다거나 낯선 이를 자신의 세계로 초대한 일화(영화 ‘봄날이 간다’의 대사 “라면 먹고 갈래”)를 모른다면 반성해야 할지도 모른다. 요리를 아무리 못해도 ‘라면을 못 끓인다’는 사람은 찾기 힘들다. 라면을 알면 한국을 이해한다는 말이 이상하지 않은 이유다.

서울 마포구 동교동에 위치한 24시간 무인라면가게에서는 각자 8가지 토핑을 골라 넣어 먹을 수 있다. 김희량 기자
서울 마포구 동교동에 위치한 24시간 무인라면가게에서는 각자 8가지 토핑을 골라 넣어 먹을 수 있다. 김희량 기자

면발의 소리는 허기를 넘어 공허한 공간을 채운다. 산문집 ‘라면의 끓이며(2015년)’에서 국물과 면의 조화를 강조한 소설가 김훈은 “수많은 남들이 나와 똑같이 이 미끈거리는 밀가루 가락을 빨아들이고 있으리라는 익명성의 안도감도 작용하고 있을 성싶다”라고 적었다.

그 면발의 매력은 사실 입 안을 넘어 우리의 귀를 채웠다. 애니메이션 아기공룡 둘리(1987년)에 ‘라면과 구공탄(일명 라면송)’ 30년이 지난 지금도 라면 마니아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전설적인 명곡이다. ‘농~심 신~라면’부터 ‘만약에 김치가 없었더라면 무슨 맛으로 밥을 먹을까?(‘안성탕면 김치’ CF 주제가)와 같은 광고 속 멜로디도 마찬가지다.

온라인 음원 사이트에도 라면 찬가가 10여개가 넘는다. ▷라면인건가(악동뮤지션, 2013년) ▷라면 좀 먹고 가요(포포리나인, 2013년) ▷라면 너라면 괜찮아(브로콜리너마저, 2021년) 등 외로움과 결합된 라면을 향한 애정은 공감의 대상이다.

추석특집 ‘볼빨간라면연구소(2020년)’ [MBC 제공]
추석특집 ‘볼빨간라면연구소(2020년)’ [MBC 제공]

라면은 영화·가요 등 대중문화를 통해 ‘따라’, ‘같이’ 먹어 보는 세계인의 문화로 확대됐다. 그 중심에 있던 것이 짜파게티다. 당시 ‘일요일은 내가 짜파게티 요리사(1988년)’라는 카피는 당시 일요일 점심에 가족들을 뭉치게 해주는 일종의 주문과도 같았다. 이후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2019년)은 ‘짜파구리(짜파게티+너구리)’ 열풍을 불러왔다.

2000년대 이후부터는 라면 예능이 본격화됐다. 예능 ‘남자의 자격-라면의 달인 편(KBS, 2011년)’에서 개그맨 이경규의 꼬꼬면이 ‘하얀 라면 돌풍’을 일으킨 후 최근에는 라면을 주제로 한 ‘라면 끼리는 남자(tvN, 2019년~2020년), 추석특집 ‘볼빨간라면연구소(2020년)’가 본격화됐다. 최근에는 유튜브를 통해 웹예능 형식의 ‘라면잉건가’, ‘라면꼰대’ 등도 인기를 얻고 있다.

국내 라면 마니아들의 모임이자 다음 카페 ‘라면천국’의 게시글 캡처 [다음 '라면천국' 캡처]
국내 라면 마니아들의 모임이자 다음 카페 ‘라면천국’의 게시글 캡처 [다음 '라면천국' 캡처]

이어 인터넷 문화가 발달하며 1999년 전국의 라면 마니아들의 모임도 생겼다. 국내 라면 마니아들의 모임이자 다음 카페인 ‘라면천국’은 현재 회원 수가 4만명이 넘는다. 당시 모임 회장이던 최용민 씨는 회원들의 레시피를 모아 색다른 87개 라면요리비법을 담은 도서 ‘라면천국(2013년)’을 출간했다. 라면천국 회원들은 면 맛집 공유와 후기를 공유하는 것은 물론 지금까지도 ‘아라봉(아름다운 라면 봉사의 줄임말)’을 통해 라면을 통한 선행을 실천하고 있다.

광고를 넘어 유명인들의 레시피는 모방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따라하기 쉬울 뿐더러 가격도 부담이 적은 탓에 진입 장벽이 낮기 때문이다. 지난달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멤버 정국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선보인 ‘불그리(불닭볶음면+너구리)’ 레시피가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짜파구리 등 소비자들의 라면 레시피가 실제 제품화된 경우가 있어 업체들도 관심이 많은 편이다. 불그리 레시피가 화제가 되자 농심은 특허청에 ‘불그리’, ‘불그리’로 곧바로 상표를 출원하기도 했다. 김희량 기자


육성연 gorgeous@heraldcorp.com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