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종일 먹는 남자, 문경석 과장의 자신감

유통의 꽃은 ‘MD(Merchandise Director)’다. 소비자가 원하는 상품이 무엇인지 찾아내 기획·개발하고 적정한 가격을 붙여 시장에 유통시키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대형 유통업체 MD들은 좋은 상품을 찾아 전세계를 돌아다니기도 한다. 헤럴드경제 리얼푸드는 21일부터 백화점, 대형마트, 오픈마켓 등 대형 유통채널의 대표 MD들을 만나 최신 소비 트렌드를 제시하고자 한다. 새로운 사업 기회를 찾고자 하는 이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길 기대한다.

하루 종일 먹는 남자, 문경석 과장의 자신감

하루 종일 먹으러 다니는 남자가 있다. 맛집을 찾아서라면 전국 팔도를 뒤진다. 어떤 때는 날 잡아서 같은 메뉴를 20~30 그릇씩 먹기도 한다. 누군가에게는 부러움을 불러일으킬 듯한 생활인데, 이 남자는 그저 ‘일’이란다. 롯데마트의 간편가정식(HMR)을 담당하는 문경석 과장 얘기다.

문경석 롯데마트 HMR 바이어
문경석 롯데마트 HMR 바이어

롯데마트는 올해 초 자체 HMR 상품을 ‘요리하다’라는 브랜드로 통일하고 꾸준히 메뉴를 선보이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마트의 간편가정식 ‘피코크’에 맞서기 위한 대항마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문 과장 역시 기존 브랜드인 ‘초이스엘’을 계속 쓸지 새로운 브랜드를 낼지 고민이 많았다고 전했다. “해외 사례를 보니 유럽 같은 곳에서는 유통기한이 1주일 밖에 안되는 HMR이 엄청 많더라고요. HMR 시장이 그만큼 세분화되고 다양해지고 있다는 건데, 우리가 그 트렌드로 가지 않을거란 보장이 없거든요. 결국 계속 성장하는 HMR 시장을 끌어가려면 단독 브랜드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첫 출시한 ‘요리하다’ 제품은 아시아푸드, 중화요리 등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볶음밥류나 만두류 등을 변형시킨 형태로 나왔다. 기대만큼 새롭지는 않다는 평도 있었다. 이에 대해 문 과장은 “식품쪽이 의외로 보수적”이라며 “반 발만 앞서가야지 한 발을 앞서가면 안된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제품 하나가 나올 때마다 사내에서도 이러쿵 저러쿵 ‘훈수’가 많았지만, 문 과장이 제품에 자신을 가질 수 있는 비결은 상품이 하나 나올 때까지 거치는 꼼꼼한 심사들이다.

롯데마트 HMR은 바이어들이 콘셉트보드를 통해 연구원에게 제안한 신메뉴를 수많은 시식 과정을 거쳐 탄생한다. 연구원들은 같은 제품이라도 재료 산지나 비율 등을 다르게 해 20~30여개의 제품을 만들어낸다. 내부 시식을 거쳐 1차로 통과한 제품은 주부 패널들에게 돌아간다. 주부 패널들의 평가를 통과해야 비로소 합격이다.

소비자 조사 기관과 연계해 진행하는 주부 패널 평가는 한 달에 2번 정도. 한 번 평가할 때마다 20~30개의 상품이 시식대에 오른다. 이 중 합격률은 40~50% 수준. 본선에 진출한 제품 중 절반은 탈락한단 얘기다.

문 과장은 최종 합격 제품의 비결에 대해 “롯데마트 HMR은 무조건 기존 제품과 차별화돼야 한다”고 전했다. “맛이 됐건 소재가 됐건 기존 제품과 달라야 해요. 외관 색상이건 식감이건 뭐 하나라도 달라야 합니다. 메밀면이라도 그냥 메밀면이 아니라 쫄깃한 식감을 살리기 위해 메밀과 밀가루의 비율을 조절하는 식으로요. 아무리 맛있게 샘플을 만들어 내놔도 ‘기존 제품이랑 차이가 없다’는 평이 나오면 통과 못합니다”

제품 개발은 끊임없이 하고 있지만, 한 달에 10~15종의 신제품이 쏟아져 나오는 건 아니다. 최종 합격을 한 후에도 콘셉트에 맞는 디자인을 개발해야 하고, 상품 출시까지는 매주 회의가 잡히기 마련이다.

차라리 합격 상품이 정해지고 나면 일이 훨씬 수월하다. 제품 맛이 확정되기 전에 연구소에서 30개 이상의 제품을 먹는 과정은 문 과장에게 정말 ‘고충’이다. “남들은 샘플 평가하러 간다고 하면 맛있는 것 먹으면서 유유자적 시간 보내도 오는 줄 알지만, 10개 이상 먹다 보면 진짜 먹는 게 일이예요. 그 고충은 아무도 모를 겁니다”.

문 과장은 한 눈에 보기에도 김준현, 유민상 등 최근 인기인 넉넉한 체구의 연예인들과는 사뭇 달라보였다. 본인 입으로도 “먹어도 살 안찌는 체질”이란다. 요즘 세상에는 복 받은 체질이다.

‘맛’이라는 건 주관적이다. 대중들에게 두루 “맛있다”는 말을 듣기란 어렵다. 이에 대해 문 과장은 “그런 욕심까지는 내지 않는다”고 말했다. “모든 계층에게 다 맛있는 제품이라면 정말 좋겠지만, 우리의 1차 타깃은 30~40대 주부예요. 그 입맛에 맞추려고 합니다”.

그는 국내 HMR 생산 기술에 대해서도 자부심을 내비쳤다. “흔히 일본의 HMR 식품 맛이 좋다고 하는데, 사실 맛은 국내 식품이나 비슷한 수준이라고 봅니다. 제작 설비도 비슷하고, 음식 자체의 품질은 국내 제품과 크게 차이가 없어요. 단지 일본은 포장 기술이 뛰어나죠. 같은 만두를 만들어도 이 육즙을 그대로 유지할 정도의 포장 기술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일 뿐입니다”.

그는 향후 HMR 시장의 성장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전망을 내놨다. “옛날에는 저도 HMR 상품에 대해 ‘팔리지도 않을 거 왜 만드나’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1~2인 가구가 늘어나고 대중들이 한식만 원하지는 않으니까 이에 맞춰 상품 질을 높이고 다양하게 만들 필요가 생겼죠. 지금은 HMR의 요건 중에 가격은 들어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충분히 맛있다면 어느 정도의 가격은 지불할 의사가 있다는 식이예요. HMR 시장은 아직 누구도 주도권을 잡지 않았다고 봅니다. 그게 롯데마트가 되어야죠”.

도현정 /


도현정 ysk@heraldcorp.com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