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함·병맛·정직으로 무장한 90년대생 새로운 재미에 열광하며 소비 주축 떠올라 상품만 파는 플랫폼은 NO...'콘텐츠' 따져 가치 소비에 '호갱' 거부, 소통은 SNS로
90년대생이 때아닌 주목을 받고 있다. 글로벌 기준에 맞춰 만 나이로 따지면 스물부터 스물아홉까지가 된다. 즉 20대의 절대다수다. 대학생이자 사회 초년생으로 고군분투하는 이들은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그저 '복세편살' 하고 싶은 심정이다. 복잡한 세상 편하게 살고 싶은 것이다.
그런 소박한 꿈을 가진 90년대생이 최근 몇 년 새 소비의 주축으로 급부상했다. 90년대생의 단순한 심경을 꿰뚫지 못하고 관행에 머무르는 기성세대와 기업은 도태될 것이란 경고의 목소리가 나온다. 이미 유통업계에서는 90년대생이 열광할만한 제품과 콘텐츠로 성패가 갈리는 모습이다. 괄도네넴띤(팔도비빔면), 읶메뜨(위메프) 같은 말이 제품과 브랜드명으로 나온다. 괴식(怪食·기이한 음식)의 인기는 예고 없이 불붙는 한편 고루한 마케팅은 눈길도 끌지 못한다.
무엇이 90년대생을 움직이는 것일까. 소비 트렌드의 최전선에 위치한 90년대생이 바꾼 소비 지형을 살펴봤다. ▶재밌는 음식이 먹기에도 좋다?=최근 식품업계의 히트 상품은 바로 90년대생이 재미를 느낀 제품인 경우가 많다. 상식을 깬 병맛과 실험정신이 핵심이다. 길고 복잡한 설명보다 한 번에 '빵' 터질 수 있는 단순한 재미가 통한다.
올 상반기 비빔면 돌풍을 일으킨 괄도네넴띤. 괄도네넴띤이 팔도비빔면이란 사실을 가장 먼저 알아본 것은 90년대생들이었다. '댕댕이(멍멍이)', '띵언(명언)'처럼 단어를 비슷한 한글로 바꿔 표기하는 '야민정음'은 90년대생이 즐겨 쓰는 언어유희다. 재미만 있으면 소문은 SNS를 타고 순식간에 퍼진다. 괄도네넴띤은 23시간 만에 준비된 1만5000세트(7만5000개) 물량이 모두 팔렸다.
장난스럽게 출시한 제품일수록 반응은 뜨겁다. 이색 제품을 SNS에 인증하고 솔직한 후기를 남기며 90년대생은 재미를 느끼기 때문이다. 농심은 지난 4월 1일 만우절 아이디어에서 착안한 '포테토칩 육개장사발면'을 정식으로 개발해 선보였다. 육개장사발면과 포테토칩을 섞은 이 제품은 '인싸템(인사이더 아이템의 줄임말)'으로 인기 몰이 중이다.
빙그레의 '세상에 없던 우유 오디맛·귤맛·리치피치맛'은 맛보다 실험정신으로 90년대생의 호응을 얻었다. KFC의 '닭껍질튀김', 햄버거 크기만 한 '뚱카롱' 등 괴식 메뉴도 이들의 지루한 일상을 파고들며 대박으로 이어졌다.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장은 "먹거리는 90년대생이 가장 쉽고 저렴하게 재미를 소비할 수 있는 영역 중 하나"라고 분석했다.
▶상품만 파는 플랫폼은 외면…콘텐츠를 소비하는 세대=90년대생들은 태어날 때부터 인터넷·디지털 기기를 접한 이른바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다. 동영상, 사진 등 끊임없이 범람하는 콘텐츠를 소비하며 즉각적인 흥미를 충족시키는데 익숙하다. 상품을 파는 온라인 쇼핑몰이라고 다를 건 없다. 이들은 제품만 나열하는 단순한 쇼핑몰을 넘어 각종 콘텐츠를 집약한 콘텐츠 플랫폼을 선호한다.
국내 온라인 패션몰 '무신사'가 대표적이다. 올해 3월 기준 무신사의 회원 수는 470만명이며 이 가운데 65%가 90년대생이다. 이들이 무신사에 접속하는 것은 단순히 패션 브랜드를 구경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무신사가 자체 제작한 웹 매거진, 단독으로 공개하는 온라인 브랜드 화보, 패션 정보를 공유하는 커뮤니티 게시판 등을 이용하기 위해 수시로 들락거린다. 무신사를 콘텐츠 플랫폼으로도 정의할 수 있는 이유다.
이해니 무신사 마케팅팀 과장은 "무신사는 상품 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일반 쇼핑몰과 달리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하는 미디어의 역할을 하고 있다"며 "호기심을 끄는 콘텐츠를 통해 90년대생 회원들의 큰 호응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온라인 체험 요소를 강화하는 흐름에 따라 옥션·11번가·쿠팡 등 기존 온라인몰들도 자체 콘텐츠를 강화하고 있다.
▶기업에 정직함·공정함 요구…'가치 소비' 고집= 90년대생들은 신념에 따라 소비하는 '가치 소비'를 추구한다. 기성 세대와 달리 가격·품질만으로 상품을 고르지 않는다. 환경보호·동물복지·페미니즘 등 자신의 사회적·정치적 신념에 부합하는 상품에 아낌없이 투자하며 새로운 소비 트렌드의 주축이 되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친환경 경영이 핵심 키워드가 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2030대가 가장 사랑하는 브랜드로 급부상한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구찌는 일찍이 가치를 중시하는 새로운 세대의 특성을 간파했다. 마르코 비차리 구찌 회장은 2017년 동물 모피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퍼 프리'(Fur Free) 선언을 하며 "사회적으로 책임을 지는 것은 구찌의 핵심 가치"라며 "동물 모피를 사용하는 건 더 이상 현대의 가치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스타벅스를 비롯한 글로벌 커피전문점들은 플라스틱 절감을 위해 종이 빨대를 도입하고, 국내 유통업체들은 기존 포장재를 친환경 소재로 교체하는 등 친환경 소비 트렌드에 적극 대응하고 있다.
90년대생들은 윤리적 가치에 반하는 기업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불매 운동을 벌인다. SNS에서 실시간으로 소통하며 해시태그 등을 통해 수시로 정보를 공유한다. '90년대생이 온다'의 임홍택 작가는 이들 세대의 특징으로 '기업에 정직함과 공정함을 요구하며, 조직 구성원으로든 소비자로든 호구가 되기를 거부한다'고 밝혔다.
일본의 경제 도발로 촉발된 일제 불매운동도 90년대생들이 이끌고 있다. 한국갤럽이 7월초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일본 보이콧 운동에 참여하겠다는 20대의 응답률은 66%였다. 일본이 화이트리스트 제외를 발표하기 직전 리얼미터 조사에서는 20대의 참여의사가 76.1%로 높아졌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20대의 반응에 따라 기업의 장·단기 매출이 영향을 받는다"고 강조했다.
▶소통은 '병맛'으로 통한다=90년대생과 소통하기 위해 유튜브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애플리케이션 분석 사이트인 와이즈앱에 따르면 2016년 3월부터 지난해 2월까지 국내 유튜브 전체 사용시간은 257억분으로 카카오톡, 네이버를 제치고 1위에 올랐다. 디지털 광고 미디어렙 메조미디어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모바일에서 하루 4~5회 광고를 보는 소비자 중 32.3%가 20대였다.
유튜브에서 통하는 광고는 'B급 감성'을 담고 있다. 90년대생은 콘텐츠 가치가 높은 광고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며 직접 찾아보기도 한다. 지난해 이종격투기 선수 김동현이 출연한 정관장 온라인몰 '정몰' 광고는 공개 5일 만에 유튜브 조회수 100만 건을 돌파했다. '정말 건강에 미친 사람들의 몰'을 콘셉트로 택배기사인 김동현이 배달하러 가는 곳마다 황당한 상황을 마주하는 내용이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90년대생은 모바일에 익숙한 영상 세대로 콘텐츠도 글이 아닌 이미지와 영상으로 접한다"며 "B급 코드는 세련되고 정형화된 정보에서 벗어나 말초적인 재미를 줌으로써 단순하고 즉각적인 재미를 원하는 90년대생의 취향을 공략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유정·박로명 기자/
육성연 gorgeous@heraldcorp.com 기자







